금요일 퇴근길, 집으로 도착하자마자 이미 꾸려놓은 짐을 챙겨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새벽 1시 비행기여서 11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해야 했기에 서둘렀다. 짐은 가볍게 촬영 및 기타 장비용 배낭 하나에 캐리어 하나로 꾸렸다. 여러차례 여행을 하다 보니 짐을 많이 꾸리면 꾸릴수록 힘들어지기만 한다는 걸 깨달아서, 최소한의 짐을 싸기 위해 거의 일주일은 고민했던 것 같다. 촬영용 장비도 최소화하기 위해 한 주 전 주말에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다녀오며 여행에서 내가 자주 쓰는 장비 위주로 추려낸 뒤 그대로 짐을 쌌다.
인천국제공항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아프리카로 향하는 에티오피아 직항은 한국 사람들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나와 같은 말을 쓰는 한국인이 적다는 사실에 약간의 불안감과 우월감같은 것이 들었다. 대학생 시절에 남미로 떠났을 때보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떠나는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의 여행이라 약간의 성취감 같은 것을 추가로 느낄 수 있었다.
인천에서 에티오피아로 바로 가는 직항 항공편은 에티오피아 국적기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직장인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다. 5월쯤 에티오피아 항공이 공항을 떠나자마자 추락해 탑승한 전원이 예외없이 사망하고, 707편을 전량 리콜했다는 뉴스가 있었어서 약간 걱정이 됐다. 그리고 항공편을 예약한게 4월쯤 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7월이 와서 비행기를 타게 되다니... 시간이 아주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동행인 S형과 만나 전체일정을 한시간 정도 걸쳐서 리뷰하고, 내리자마자 해야할 것들을 점검해 짐가방 위로 올려놓았다. 첫 날 일정은 인천공항에서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볼레 공항으로 이동한 뒤, 짐바브웨의 빅토리아폴스 공항으로 환승을 해야 했다. 짐바브웨의 빅토리아폴스 공항에 도착해서는 공항에서 나가기 전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왕복할 수 있는 카사비자를 발급받은 뒤, 미리 예약해놓은 투어버스를 타고 잠비아로 이동해 리빙스턴 강의 선셋크루즈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리빙스턴에 있는 졸리보이스 백팩커스에 체크인하고 1박을 하려고 했다.
짐바브웨는 공항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치안이 좋지 않고 공무원들도 부패한 경우가 종종 있어서 짐검사를 할 때나 캐리어를 옮길 때 짐 주인이 모르게 귀중품을 훔쳐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정보를 책과 인터넷을 통해 들었다. 도난 방지를 위해 귀중품은 무조건 배낭 안쪽이나 주머니에 넣어서 철저히 감시하기로 했다. 또 일정 상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두차례 왕복해야 했기 때문에, 내리자마자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왕복할 수 있는 카사비자(Univisa)를 발급하기 위한 서류도 짐가방 위쪽으로 배치해 미리 준비했다.
인천공항 게이트콜이 나오고, 앞에서 준비하고 있던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한 뒤 앞좌석에 붙어있는 모니터로 영화를 보는둥 마는둥 하다가 잠이 들었다. 내 키가 179인데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 항공은 이코노미 클래스도 앞좌석에 무릎이 닿지 않을 정도로 좁지 않아서 생각보다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국적기가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USB를 통해 충전도 되는 좌석이라 심심하지 않게 놀면서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11시간 비행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나마 두툼한 C-Guard 목베개를 챙겨 기대잘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프리카 여행은 이동시간이 긴 경우가 많아 목베개는 필수다.)
11시간에 걸친 비행을 마치고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볼레 공항에서 큰 문제없이 환승해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 공항으로 현지 시각 오후 1시쯤 도착했다. 아디스아바바 볼레 공항은 규모가 큰 아프리카의 허브와 같은 공항이지만, 동서울 시외버스터미널보다 정신없고 게이트 위치에 대한 정보가 부실하게 안내되어 있어 환승하기가 약간 어려웠다. 게다가 버스 기다리는 줄이 매우 길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너무 정신없어서 카메라를 꺼냈다가 도난당할까봐 공항 사진은 못 찍었다. 아프리카 물류가 늘어나며 볼레 공항은 계속 증축 중이라고 한다. 현재는 조금 상황이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빅토리아폴스 공항에 내리자마자 '아! 아프리카에 도착했구나.'하고 느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까사비자 발급을 위해 입국장으로 뛰어갔다. 우리의 첫날과 둘째날 일정은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왕복해야 해서,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까사비자 서류를 작성하고, 내리자마자 신청서류를 제출해 여권에 도장을 받았다. 입국 심사장에 비자 발급하는 공무원이 2명밖에 없고, 그마저도 잡담하느라 한 명 심사하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걸리므로 무조건 먼저 가는게 좋겠다. 안 그러면 비자 발급 줄에서 한참을 서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나마 운좋게 빨리 받아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우려와는 달리 출국장에서 짐을 도난당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순진했던 것일 수 있지만 생각보다 공항 분위기가 그렇게 험악하지는 않았다. 나는 부패 공무원이 있다고 해서 브레이킹 배드처럼 약에 취한 아저씨가 짐을 막 뒤져보고 능글맞게 비싼 물건을 빼가는 걸 상상했는데,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 있었지만 생각보다 깔끔하게 출국장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거의 총액 500만원에 육박하는 각종 전자기기와 DSLR, 액션캠, 짐벌 등 촬영장비를 들고 나와야 해 불안했지만, 아무것도 잃어버린 건 없었다.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 공항 출국장으로 나오니 미리 예약해 둔 투어버스 드라이버가 내 이름이 든 피켓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첫 날 숙소는 배낭여행객들에게 유명한 잠비아의 졸리보이스 백팩커스인데, 잠비아로 바로 입국하는 항공편이 없어, 짐바브웨로 입국한 뒤 잠비아로 넘어가야 했다. 그런데 길도 모르고 교통편도 인터넷 검색해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잠비아 리빙스톤 아일랜드 투어사에 문의해 투어버스를 렌트해 국경을 넘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국경으로 가는 교통편이 불편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기 위해 버스를 렌트하는 것 같았다. 막상 국경에 도착해보니 공항에 택시도 많고 교통편이 없는 것 같진 않던데, 이 곳은 관광객 바가지가 심하기로 유명하다고 하니 장기간 비행으로 지친 상황에서는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투어버스 일행이 있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항 밖에서 원주민 옷을 입고 단체로 군무를 추며 노래를 부르는 무리가 있어서 구경하며 기다렸다. 투어버스 드라이버가 말하길 사진을 찍으면 돈을 내야하는 호객꾼들라고 해서 눈도 안 마주치고 소리만 듣고 있었다. (곁눈질로 감상했다.) 투어버스 동승자가 비자발급 줄에 걸려있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거의 30분이 넘는 시간을 대기하고, 드디어 버스에 탑승해 짐바브웨-잠비아 국경으로 이동했다. 빅토리아폴스 공항부터 짐바브웨 국경 다리를 통과해, 국경 검문소에서 까사비자를 확인받고 차량으로 잠비아 졸리보이스까지 이동하는 데 두시간 정도 걸렸다.
'해외여행 > 아프리카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비아 여행 - 아찔한 악마의 수영장, 세계 3대 폭포 빅토리아 투어 (스압) (0) | 2020.10.18 |
---|---|
짐바브웨 여행 - 잠비아 국경 넘기, 졸리보이스 백팩커스 체크인, 리빙스턴 아일랜드 선셋 크루즈 (0) | 2020.10.04 |
아프리카 4개국 횡단 배낭 여행기 (0) | 2020.07.29 |
댓글